김상엽·김미회 “영혼이 있는 장례지도사 키워내야죠”

수원안심장례지도사교육원을 만든 김상엽 원장(우)과 김미회 이사 © 김충현 기자
수원안심장례지도사교육원을 만든 김상엽 원장(우)과 김미회 이사 © 김충현 기자

장례지도사는 장례식을 치르는 유족과 가장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사람들이다. 장례지도사의 손짓이나 말 한마디에 유족의 마음이 풀어지기도 하고, 딱딱하게 굳기도 한다. 고인의 마지막을 매조지하는 장례지도사의 역할은 장례식을 통틀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수준 이하의 장례지도사로 인해 유족이 상처를 입는 경우도 간혹 있다. 이는 마음으로 다가가야 할 장례지도사가 기계적으로 고인과 유족을 대하면서 벌어지는 불상사다. 이러한 불상사를 막으려면 '제대로 된, 영혼이 있는' 장례지도사가 필요하다.

상조·장례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두 전문가가 손을 맞잡고 '제대로 된' 장례지도사 교육원을 차렸다. '수원안심장례지도사교육원'이 바로 그곳이다. 프로야구 수원 KT위즈 구단의 야구장 인근에 자리를 잡은 교육원을 방문해 그 주인공들을 만났다.

수원안심장례지도사교육원(이하 안심장례교육원) 설립을 위해 손을 맞잡은 이는 김상엽 원장과 김미회 이사다. 김 원장은 상조업계, 김 이사는 장례업계에서 경력을 쌓았다.

김 원장은 보험 영업을 8년간 하면서 MDRT(백만달러 원탁회의)를 2년 연속 가입할 정도로 각광을 받았다. 전국 랭킹 4위에 오를 정도로 보험업계에서 이름을 날렸다. 이후 김 원장은 에이플러스라이프로 이직해 기업을 상대로 상조영업을 했다. 주로 임원들의 상을 담당하며 VIP 서비스를 했다. 김 원장은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의 장례계약을 따내고 진행시켜 커리어의 정점을 찍는다.

김 이사는 국내 최상위권 상조회사 의전팀에서 8년동안 일하며 경력을 쌓았다. 독립하게 된 계기는 세월호 참사다. 세월호에서 인양된 시신들을 유족에게 인계하는 역할을 맡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김 이사는 상조회사에서 나와 의전팀을 꾸렸고, 차근차근 경력을 늘려나간다.

접점이 없을 것 같은 김 원장과 김 이사는 학연으로 만났다. 두 사람은 2018년 을지대 최고위과정에서 만나 친분을 쌓았고 마침내 장례지도사 교육원 설립이라는 목표 하에 의기투합했다.

김미회 이사가 명정 작성을 위한 서예 연습 시범을 보이고 있다.  © 김충현 기자
김미회 이사가 명정 작성을 위한 서예 연습 시범을 보이고 있다. © 김충현 기자

안심장례교육원 1기 과정은 지난 12일 개강했다. 장례지도사 교육과정 수강생들은 표준교육시간인 300시간을 이수하면 무시험으로 국가자격을 취득한다. 교육은 이론 150시간, 실기 100시간에 현장실습 50시간으로 진행된다.

안심장례교육원은 장례지도사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안전장치를 뒀다. 수강생들은 보통 '내가 정말 장례지도사를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한다. 이에 안심장례교육원은 김 이사가 운영하는 '상조24' 의전팀 행사현장에 수강생들을 3일간 동행하게 한다. 이 3일 동안 현장에 적응 여부에 따라 수강생들은 장례지도사가 되겠다고 마음을 굳히는 경우도 있고, 자연스레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교육원의 배려로 수강생이 진로를 확실히 결정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수강생들을 배려했더니 중도 포기자가 거의 없더라고요.”

김 원장의 말투에서 자신감이 묻어난다. 1기 수강생 13명 중에 중도 포기한 한 분 빼고 12명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안심장례교육원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빙해 특강도 진행한다. 서예의 달인인 이일태 선생이 직접 수강생들에게 서예를 가르친다. 그렇게 배운 서예 실력은 명정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명정을 출력해 쓰는 게 대세지만 안심장례교육원 수강생들은 직접 붓글씨로 명정을 쓰게 된다.

수강생 연령대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 특히 최연소 수강생인 이모군(24)은 예습·복습까지 해오며 의욕적으로 과정에 임하고 있다. 김 원장과 김 이사는 이모군의 학습태도를 눈여겨 보고 있다. 과정을 이수하면 당장 현장에 투입해도 손색이 없을 것으로 기대하는 중이다.

김미회 이사가 허리 높이까지 올라오는 특수책상을 이용해 염 실습 시범을 보이고 있다.© 김충현 기자
김미회 이사가 허리 높이까지 올라오는 특수책상을 이용해 염 실습 시범을 보이고 있다.© 김충현 기자

김 이사는 장례지도사를 하면서 자신의 영혼을 쏟아 부어 일한다. 뜻 깊은 경험도 많다.

“한 번은 탈북하신 분 장례를 맡게 됐어요. 이쪽(한국)에 지인이 탈북한 친인척 서른 분 정도밖에 없었죠. 고인이나 유족들이 장례식을 보고 '남쪽에 오길 잘했다' 싶은 마음이 들게 해주고 싶었어요. 열과 성을 다해서 고인을 모셨더니 나중에 유족들이 집으로 초대를 해줬어요. 뷔페를 시켜놨더라고, 고맙다고.”

이때의 경험은 김 이사로 하여금 더욱더 고인을 열성으로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김 이사는 교육원의 장례지도사 양성과정을 통해 '영혼이 있는 장례지도사를 길러내고 싶다'고 말한다.

“입관실에서도 '고인의 영혼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라'고 (다른 장례지도사에게) 말해요. 제대로 모시자는 거죠. 억지로 하지 말고, 고인의 가족이 돼서 모신다고 생각하면 돼요. 하나의 직업을 떠나서 장례에 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싶어요. 돈보다 가치를 좇는 사람을 길러내고 싶습니다.”

김 이사의 말에서 자신감과 힘이 느껴졌다. 김 원장과 김 이사의 의기투합이 장례업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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